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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도시락 예찬
 장택상  1488
 2016/10/06 10:06:26  61.24***.100.***


가을이 깊어 갑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마음이 급해집니다. 가볍게 떠나야 되는데, 어디로 갈까. 멀고 가까운 산의 능선이 어머님 저고리 소매 날처럼 곱습니다. 산의 확 트인 능선을 따라 내려가고 싶습니다. 그런 곳이 기억이 납니다. 지리산 종주는 까마득한 옛날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벅찹니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도 좋습니다. 아니, 모악산 정도만 되어도 최고입니다. 완산칠봉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의치 않다면 만경강 뚝방이라도 걷고 싶습니다. 김밥 몇 줄 챙기고 나서면 될 것입니다. 언제 가지? 누구랑? 아무래도 주말에 가야할까. 그 친구, 어디 다닌다고 하던데. 혼자 가 볼까? 옛 시인은 혼자도 다니셨다는데, 그런 시가 있습니다. “주름살 많은 늙은 산의 명상하는 얼굴을 사랑하노니, 오늘은 잊고 살던 산을 찾아 먼 길을 떠나네.” 잊고 살다니, 그렇게 좋아하시는 산이지만, 어쩌다 가셨던 모양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가 기억이 납니다. 춘포초등학교였습니다. 운동장 끝에 노란 개나리가 피었고, 상급생들이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나도 언제 도시락을 먹게 되지?” 언제 부터 도시락을 싸 줄지 궁금했습니다. 소풍날이 기다려졌습니다. 도시락 때문입니다. 달콤한 주황색주스가 생각이 납니다. 얇은 비닐로 삼각 김밥처럼 포장을 했는데, 사카린물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소풍가는 곳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봉개산(춘포산), 삼례 한내다리, 익산 수도산 가운데 한 군데였습니다. 소풍을 ‘원족’이라고 했습니다. 멀리 걸었습니다. ‘소풍, 어디 갔다 왔느냐.’고 하면, ‘목적지에 갔다 왔다.’고 했습니다. 그 때 그렇게 싸가고 싶어 했던 도시락은 한참 뒤에나 가능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도, 교실이 부족해서, 저학년은 오전 오후로 나눠서 수업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시골에서 도시로 학교를 보낸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농촌에서 노동력은 곧 경제력입니다. 귀한 노동력의 손실을 감수하고, 거기에다 없는 돈을 들이면서 학교를 보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 뿐이 아닙니다. 식량과 땔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었습니다. 평야지대에서는, 그것도 부잣집 얘기이지만, 주로 짚을 말려서 연료로 썼습니다. 기차시간에 맞춰, 새벽부터 밥을 지어서, 학교를 보냈습니다. “학교를 보내느라고 힘들었다.”를 다른 말로 표현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내가 도시락 몇 개씩 쌌다.”라는 것입니다. 도시락의 개수만큼 훈장을 드려도 모자라는 분들입니다. 밥은 보리밥이든 감자나 고구마 밥이든 좋습니다. 반찬은 어떻게 합니까. 눈물 젖은 빵 얘기도 있지만, 김치 국물에 젖은 가방을 빼놓고는 그때 학교에 다녔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집도 아이들이 커서 집을 떠났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그 시절을 저의 집사람은 ‘김밥을 싸던 시절’이라고 부릅니다. 김밥을 몇 번이나 쌌을 까요. 집 사람에게 김밥을 몇 번이나 쌌느냐고 물으면, 아마, ‘수도 없이 많이 쌌다.’고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절차가 복잡한 김밥만 쌌는지 궁금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김밥을 싸와서 맛있게 먹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부러워할 것 같아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이것저것이 힘은 들겠지만, 저희 아이들이, 다른 친구들 김밥 먹는 것을 부러워하게 해서야 쓰겠습니까. 요즘 초-중-고등학교는 학교에서 급식을 한다고 합니다. 생각할수록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은 모름지기 한 솥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옛날같이 각자 도시락을 싸오라면 주부들에게는 반찬 걱정이 큰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갈증이 심하게 납니다. 짬뽕이나 자장면 같은 중국음식을 먹으면 더 심합니다. 짜고, 조미료를 많이 넣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문 배달하는 음식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약간 멀리 갈 때는 간식거리를 준비하곤 합니다. 보온병에 커피와 계란을 삶아 넣어 가면 편합니다. 옛날에 기차를 타면 홍익회에서 파는 삶은 계란 사먹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 맛 보다 더 좋습니다. 보온병에 넣으면, 뜨거울 정도로, 커피와 계란이 따끈합니다. 장항에 가면 바닷가 소나무 숲이 일품입니다. 얼마 전에 몇 명이 가면서 감자와 달걀을 삶아서 아이스박스에 넣어 갔습니다. 바닷가 정자에서 먹는 간식 맛이 잊어지지가 않습니다.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이 나눠달라고 해서 후하게 인심도 썼습니다. 그때 아주머님들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덕담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어느 해 가을, 집사람과 딸아이랑 법주사에 갔던 생각이 새롭습니다. 군산 해망동 어시장에서 바닷장어를 사서 도시락 반찬을 했었습니다. 냇가에 도시락을 펴고 둘러앉아서 먹던 바닷장어 구이가 부드럽고 감칠맛이 났었습니다. 양념한 바닷장어가 기름기가 많아서 그랬는지, 덥히지 않았는데도 촉촉했었습니다. 도시락 용기가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보온도 되고, 국물이 있는 반찬을 싸도 흘러넘치지를 않습니다. 김치 국물이 새지 않는 반찬그릇이 있다니, 옛날 같으면, 기적입니다. 제 기준으로 볼 때, 그것은 비아그라 못지않은 발명품입니다. 밥상에 맛있는 반찬이 새롭게 나오면 도시락을 싸서 어디를 다녀오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느 산등성이에 앉아 따끈한 아욱 된장국에 보리와 돔부콩을 듬성듬성 넣은 도시락을 까먹는 그 맛이 어디입니까. 그 것,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잖습니까. 장택상/군산대학교 명예교수 수학과 22회
* <가족신문.kr>, <시사전북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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