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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럼> 장아찌 예찬
 장택상  1732
 2016/06/24 17:49:09  61.24***.100.***


장마가 시작 되었습니다. 어제 밤은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창문을 열어 놓고 잤습니다. 요즘 시골에는, 무슨 매미 유충이라는데, 흰 귀뚜라미 같은 벌레가 극성입니다. 나무마다 눌러 붙어서 수액을 빨아먹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 무풍에서 보내온 참나리가 무더기로 있습니다. 주황색 요염한 무풍댁의 모습에 단번에 반해버리고 말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무풍댁이 벌레 때문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농약사를 찾아갔습니다. 농약사 주인께서 깍지벌레와 진딧물 약도 함께 넣어주셨습니다. 한 통 타서, 감나무 두릅나무 모과나무, 곳곳에 살포 했습니다. 올 해는 감을 몇 개나 따 먹을 수 있으려나, 깍지벌레라는 것 때문에 감 따 먹어 본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텃밭에, 농사라고, 고추 스물 댓 포기, 애호박 몇 포기, 가지 열댓 포기가 전부입니다. 금년에 가지는 너무 많이 심은 것 같습니다. 원래 가지는 식구 수대로만 심으라고 했거든요.
 
아침부터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는 비가 싫지가 않습니다. ‘장마철에 오이 크듯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오이 냉채는, 취청오이 백오이 보다, 가시오이가 향도 좋고 식감이 부드럽습니다. 저는 가시오이만 심었습니다. 눈치 없이 비를 반기는 마음이 미안하게 느껴집니다. 이럴 때면 가람선생님의 시조라도 생각을 해보십시오. “짐을 메어 놓고 떠나려 하시는 이날/ 어둔 새벽부터 시름없이 내리는 비/ 내일도 내리 오소서 연일 두고 오소서.” 잘 아시다시피, 가람선생님은 우리 고장 익산 출신이십니다. 그 분의 ‘비’라는 시조의 첫 연 입니다만, 특히 마지막 연이 절창입니다. “잡았던 그 소매를 뿌리치고 떠나신다./ 갑자기 꿈을 깨니 반가운 빗소리라/ 메어둔 짐을 보고 눈을 도로 감으오.” 아무리 가람선생님의시라고는 하지만, 비를 싫어하는 짚신 장사들이 들으면 정말로 속깨나 터질 말씀입니다. 우산 장사들은 좋아하겠지만요.
 
여름철이면 어머님께서는 열무김치가 담긴 옹기그릇을 통째로 물에 담가 놓으셨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김치라면 시큼한 맛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치 얘기가 나오면 꼭 저의 집사람도 “고맙다”라는 말부터 합니다. 우리들이 “김치를 담가먹도록 해주신 선조들이 고맙다”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음식을 영양을 보고 먹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몸에 좋다는 것, 무슨 성분이 있어서, 무엇에 좋다는 것, 그런 얘기가 듣기가 싫어졌습니다. 전주 남부사장 매곡교 끝에 새로 생긴 막걸리집이 있습니다. 제가 무엇을 좀 알게 보여서 그랬을까요. 어느 손님이 제게 “강황이 어디에 좋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저, 잘 몰라요, 저는 그냥 아무 것이나 먹어요.”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음식은 끼니를 때우는 것이고, 또 거기다가 맛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최소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찬물에 보리밥을 말아서, 시큼한 열무김치를 얹혀 먹던 그 맛이 그리워서 일까요?
 
수학을 가르치다 보니, 순서를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무김치가 맛있는가, 배추김치가 더 맛있는가. 김치가 좋은가, 장아찌가 더 좋은가. 스스로 자주 묻습니다. 물론 어떤 것은 질문이 되지 않는 것도 많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역시 필요한 것은 수학에서 말하는 포함관계입니다. 김치는 장아찌의 일종이라고 볼 수가 있지만, 장아찌를 김치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김치는 넓은 의미로 보면 장아찌의 일종”이라고 볼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장아찌 예찬론자인 저는 “우리나라 반찬치고 장아찌 아닌 것이 없다”라고 여깁니다.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면 서양식 샐러드도 생김치의 일종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주 싱겁게 담근, 장아찌의 한 가지입니다. 누가 그랬습니다. 의자는 낮을수록 편하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낮게, 방바닥에 앉는다. 샐러드를 장아찌라니, 꼭 그 얘기입니다.
 
나물도 일종의 생김치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하게, 장아찌의 한 종류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푸성귀를 데쳐서 무친다는 것, 대단한 요리 기법입니다. 저의 동네에 교회가 있는데, 장로님이 농사일에 박사이십니다. “식물들은 동물하고 달라요. 멍청해요. 먹이를 많이 줘도 동물들은 배가 부르면 남기는데, 식물들은 안 그래요. 거름을 주면 주는 대로 다 먹어요. 거름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돼요.”라고 하셨습니다. 축산 분뇨가 대량으로 나와서 유기질 비료라고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요즘 채소들이 질산을 너무 많이 함유하여 문제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니까, 채소는 데쳐서 질산을 왠만큼 빼고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채소의 풋 냄새, 풋 기를 뺀다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조리과정인 줄은 몰랐습니다. 풋 기를 빼는 다른 방법은 소금물에 절였다가 씻는 것입니다. 모든 장아찌들은 두 가지 방법 중 한 가지를 거칩니다.
 
구수하게 잘 구운 빵을 좋아하는 사람은 생밀가루 냄새도 좋아합니다. 잘 익은 김치의 맛을 아는 사람은 생김치의 그 풋내도 사랑합니다. 무장아찌는 겨울철 동치미를 다 먹을 무렵, 국물에 절여진 무를 끄들끄들 하게 말려서 고추장이나 된장에 버물려서 만듭니다. 동치미나 무김치의 시원한 맛은 없지만, 다른 형태의 식감은 남아 있습니다. 모든 장아찌들에는 가장 맛있을 때의 그 원래 맛이 어딘가에 들어 있습니다. 어떤 그리움처럼 깊숙하게 들어있는 맛, 짠 가운데 감치는 맛, 쭈글쭈글한 피부 속의 엷은 핏기처럼, 아득함이 있습니다. 사실 장아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김치를 먹으면서 무장아찌의 맛도 기억하겠지요. 노년은 곰삭은 장아찌와 비슷합니다. 두릅장아찌가 어찌 갓 데쳐서 초장에 찍어먹는 참두릅 맛과 비교를 하겠습니까. 제철 제 음식이 최고 아닙니까. 장아찌는 첫 사랑을 기억하는 노인네를 닮았습니다.

* <가족신문.kr>와 <시사전북 7월호>에 쓴 칼럼을 그대로 옮겼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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