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참여마당
 
 
 
 
 
 
 <칼 럼> 청록집(靑鹿集)
 장택상  553
 2018/02/18 22:47:57  61.247.100.***


‘태양을 의논하는 거룩한 이야기는/항상 태양을 등진 곳에서만 비롯하였다.’
우리 고장 출신이신 신석정(1907 - 1974) 시인의 ‘꽃덤풀’이라는 시의 첫 구절입니다. 저는 세상이 어수선할 때 마다 이 구절이 자주 생각이 나곤 합니다. 공직자가 비리 때문에 면직 된 후, ‘선후배 동료들이 억울하겠다며 분해하기도 하고 위로해 주셨다. /// 죄 많은 저에게 이처럼 큰 은혜를 해주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아멘’라는 신앙 간증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영상을 유 튜브를 통해서 수 만 명이 봤고, 현직 여검사가 울분을 느껴, 그 사람에게 ‘성 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했다고 합니다. 그가 ‘나는 잘못이 없고, 억울하게 면직을 당했는데,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 삶을 얻었다.’고 얘기했기 때문입니다.

어느 세상이고 뻔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들이 상투적으로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의 뜻이 잘못 전달되어 상처 받은 사람들이 있다면, 널리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가해자는 없고, ‘남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지적 장애자’들이 문제라는 뜻 아닙니까. 누가, 어떤 사람들이 그런 표현을 썼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들, 그 면면들, 한 결 같이 떳떳하고 부끄럼이 없잖습니까. 참으로 비열한 사람들입니다. 일본이 전쟁 범죄를 사죄하는 방식도 마찬가집니다. 근본적으로,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 대통령이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고 전쟁범죄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것도 문제였지만, 그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어, 불가역적이라는, ‘위안부 협정’을 한 것은 ‘코미디’에 가까운 일입니다. 우리로서는 ‘재협상은 없다.’라는 지금대로 두는 것이 좋습니다. 뻔뻔한 사람들을 비열한채로 놔두자는 것입니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5일 우리 정부가 수립될 때 까지를 소위 ‘해방공간’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사회는 각계각층, 특히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시대였습니다. 그 당시 몇 사람이 모이면, ‘나라가 어떻게 될지’ ‘어떻게 해야 좋은 나라를 만들지’, 걱정들을 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이였던 ‘민병도, 정진숙, 윤석중, 조풍연’ 선생들도 서울 종로 어느 곳에 모여서 나라 걱정을 했답니다. 그 때 나온 방안이, ‘국민들을 계몽하고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출판사를 만들자.’였습니다. 그 해(1945년)가 바로 ‘을유년’이였고, 정진숙 씨의 제안으로 ‘을유문화사’라고 이름을 짓습니다. 을유문화사는 1945년 12월 1일에 창립되었습니다. 이듬해 1946년에 출판된 책들을 보면, ‘어린이 한글책, 가정글씨체첩, 소파동화집(전5권), 청록집, 지용시선, 월간 소학생’ 등등이 있습니다.

‘청록집’은 1946년 6월 6일 을유문화사에서 출간 되었습니다. 경기도 안성 출신인 박두진(1916-1998) 시인은 갓 설립 된 을유문화사에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박두진 시인께 조풍연 선생이 ‘자네들 시집 한 권 낼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권유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박두진은 경주에 있는 목월에게 ‘급히 상경해 달라.’라는 전보를 쳤고, 목월이 올라 왔습니다. 두 사람은 이미 서울에 살고 있던 지훈을 찾아가서 시집을 내기로 했습니다. 제목은 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서 ‘청록집’으로 했고, 시를 싣는 순서도 ‘목월-지훈-두진’으로 정했습니다. 목월과 지훈은 알고 있는 사이였습니다. 1942년 지훈이 목월을 만나러 기차로 경주에 갔을 때, 목월은 ‘조지훈 환영’이라는 플래카드를 흔들며 맞았다고 합니다. 여러 날 묵으며 가슴을 텄는데, 그 추억이 그리워 지훈이 시 ‘완화삼’을 보냈고 목월의 답장이 시 ‘나그네’입니다.

소설가 이태준이 발행했던 ‘문장’은 1939년 창간되었다가 1941년에 강제로 폐간 되었습니다. 소설은 이태준, 시조는 이병기, 시는 정지용이 추천을 맡았습니다. 시는 3회 추천을 받아야 했습니다. ‘문장’지에 추천 받은 시인은 ‘김종한, 조지훈, 이한직, 박목월, 박남수’의 6명입니다. 모두 창간 첫해인 1939년에 추천 받기 시작했습니다. 청록집을 낼 당시에 김종한은 작고했고, 박남수는 이북, 이한직은 학병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경기도 고양 출신인 이한직은 18세에 문장지에 추천을 받은 천재였는데 아쉽게도 청록집에 참여를 못한 것입니다. 문단에서는 이한직이 ‘호남, 김제 출신이라 지역감정 때문에 일부러 뺐다’는 유언비어가 떠돈 적이 있었습니다. 이한직은 부통령을 지낸 김성수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장면 정권 때 주일대표부 문정관으로 있다가,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에게 파면 당했고, 일본에서 작고했습니다.

얼마 전 서울에 보름가량 머문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중고 클래식 음반도 살 겸, 혜화동 로타리에 있는 알라딘 중고 책방을 갔습니다. 어느 날은 전북사대 부속고등학교에 근무했던 김재희 교장을 만나서 함께 책방에 갔습니다. 정년퇴직을 하셨고, 동양화를 배우고 계신다는, 김 교장은 단 한 권, ‘청록집’을 사셨습니다. 그 때 저는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하! 과연 명문 고등학교를 나온 분은 다르구나!’라는 것 입니다. 그 분은 전주고등학교를 나오시고, 공주 사범대학 지리교육과를 졸업하셨습니다. 우리 나라 정치도 교양을 얼마만큼 갖춘 사람들이 맡았으면 좋겠습니다. 14살짜리 중학생이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했답니다. 주머니에 돈은 없고, 그 자리에서 그 시를 몇 번이나 읽고 외웠답니다. 유종호 교수가 ‘신태양’에 실린 미당의 ‘풀리는 한강 가에서’라는 시를 만났을 때의 얘기입니다.

우리가 분단국가로서 평창 동계 올림픽을 치르면서, 또한 오늘 날 우리나라 정치가들의 장바닥 모리배와 같은 행태들을 보면서, 우리가 느끼게 되는 안타까운 심정을 신석정 시인의 시 ‘꽃덤풀’의 두 번째 구절에서 다시 되새겨 봅니다.

“달빛이 흡사 비 오 듯 쏟아지는 밤에도/우리는 헐어진 성터를 헤메이면서/언제 참으로 그 언제 우리 하늘에/오롯한 태양을 모시겠느냐고/가슴을 쥐어 뜯으며 이야기하며/가슴을 쥐어뜯지 않었느냐?

*본 칼럼은 '시사전북(2018년 2월호)'와 '가족신문.kr'을 위해 썼습니다.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공간 [2] 관리자 2004/03/17 2777
159 <칼럼> 입 속의 검은 잎 장택상 2018/10/06 116
<칼 럼> 청록집(靑鹿集) 장택상 2018/02/18 553
157 <칼럼> 도시락 예찬 장택상 2016/10/06 1486
156 <칼 럼> 장아찌 예찬 장택상 2016/06/24 1731
155 [인문학스콜레-2地] 네이버밴드로 초대합니다. ... 하재일 2015/02/05 5774
154 카드용 가방 서재업 2014/08/15 1837
153 <포 엠> 물옥잠화 장택상 2013/10/01 2635
152 회원등록이 안됩니다. [1] 관리자 2013/09/12 1538
151 미술교육과 99학번 박영채 '혼혈아 앨리' 출간... [1] 박영채 2012/03/09 2894

  
  1     [2]    [3]    [4]    [5]    [6]    [7]    [8]    [9]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