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참여마당
 
 
 
 
 
 
 <칼럼> 입 속의 검은 잎
 장택상  116
 2018/10/06 04:54:58  ***1.247.103.***


‘입 속의 검은 잎’은 기형도(1960-1989) 시인이 쓴 시의 제목이자 유고시집의 이름입니다. 시인은 연평도 출신입니다. 교사였던 아버님의 고향이 황해도였는데 6.25 때 연평도로 피난 왔다가 면사무소에 근무하게 되어 눌러 사셨답니다. 기형도 시인은 3남 4녀의 막내였답니다. 아버지가 간척사업에 실패한 후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에 판잣집을 짓고 이사했는데, 시인이 5살 때랍니다. 그 4년 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가계가 기울었고, 어머님이 가족의 생계를 지탱하셨답니다. 시인은 초등학교부터 공부를 꽤 잘 했다고 합니다. 1980년 3월, 소위 ‘80년의 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입학하여, 방위로 군 병역을 마치고, 졸업한 후에는 중앙일보 기자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시인은 1989년 3월 7일,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서울 파고다극장에서 새벽에 싸늘한 죽음으로 발견 되었습니다. 뇌졸중이었다고 합니다.

시인은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시 ‘안개’는 5살 때부터 그의 짧은 생을 마칠 때까지 살았던 소하리 벌판과 소하포구의 모습들, 아름답지만 슬프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그대로 떠오르게 합니다. 곳곳에 유달리 안개가 자주 끼는 지역들이 따로 있습니다. 전주-군산 옛 국도를 지나다보면 ‘탑천’ 근처가 그렇습니다. 정읍도, 공주도, ‘안개가 낀 것을 보니, 이곳이 바로 그곳이구나.’하는 느낌이 듭니다. 요즘 가을이 점점 깊어가면서 안개 끼는 날이 많습니다. 기형도 시인의 글에 안개에 대한 인상적인 표현들이 많습니다. “...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에 서 있어야 한다...”랄지, “...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랄지, 어린 시절부터 살면서 내면에 침착된 풍경들을 수채화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입 속의 검은 잎’이라니, 참 묘하고 음침한 기운이 감돕니다. 시를 읽어봐도 시인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둡고 암울한 느낌만 감돌뿐입니다. “.....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 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넘쳤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잎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시인의 생각이야 어떠했든, ‘입 속의 검은 잎’은 ‘혀’일 텐데, 그것이 ‘검다’라고 했으니, 죽은 자의 혀라는 뜻인가, 무엇인가 외치지 못했던 내 혀에 대한 저주인가, 무섭습니다.

무슨 연극제행사가 있었던가, 전주 금암동로타리를 지나다가 현수막에 ‘서고사 가는 길’이라는 글귀가 보였습니다. 문득 기형도 시인이 전주를 다녀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어, 그 얘기를 어떻게 연극으로 만들 수가 있었지?”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시인이 작고하기 전해 여름, 1988년 8월 2일(화)부터 8월 5일(금)까지, ‘서울-대구-전주-광주-순천-부산-서울’ 코스를 돈 기행문을 읽어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대구에 밤늦게 도착하여 ‘장정일(1962 - )소년’을 만납니다. 시인은 28살, 소년은 26살 때입니다. 이튿날 대구에서 전주까지 버스를 탑니다. 오후 6시에 도착하여 서고사에 있던 강석경(1951년- ) 소설가에게 전화를 하고 찾아갑니다. 이튿날 광주 망월동 제3묘원을 갔다가 우연히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을 만납니다. 이후 여정은 밤기차로 순천-부산을 거쳐 서울로 돌아갔다는 얘기입니다.


대구로 내려가서 만난 장정일은, 본인의 얘기로, 직업군인의 아들이고, 중학교만 나왔고, 어머님이 여호와의 증인(?) 종교를 가졌고, 그래서 양심적 병역 기피자이며, 초판본의 책만 읽는 등, 우리시대의 기인입니다. 지금도 신문에 칼럼을 쓰고 있는데, 엄청난 독서량을 바탕으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우리들과 우리 사회에 대한 ‘불편한 진실들’을 여지없이 지적해 내고 있습니다. 시인 박기영(1959년 - )의 지도(?)로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2002년)’을 냈답니다. 박기영 시인의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빕밥(2016년 모악시선)’ 내용도 굉장합니다. 서고사로 찾아가서 만났던 소설가 강석경은 그 당시 기형도 시인이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고 있던 중앙일보에 ‘가까운 골짜기’라는 소설을 연재하고 있었답니다. 9살 선배인 여류소설가에 대한 존경심도 있었고, 원고를 직접 받아오려는 실무적인 목적도 있었을 것이랍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멀든 짧든, 뜻밖의 인물을 만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시인이 망월동 묘지에 다녀오면서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을 만나 뵈었다는 장면이 그렇습니다. “여인이 힘없이 인사를 했다. ‘묘지 다녀가세요?’ 나는 ‘한열이 선뱁니다. 연세대학교 선배예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학교 보내면 뭘 해요. 이렇게 돼버렸는데.’ 여인은 말했다. ‘이따금 이곳에 다녀갑니다.’ 늙고 지친 얼굴이었다. 파마머리의 절반이 백발이었다.” 기형도 시인의 ‘대학 시절’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는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 시인이 말한 ‘입 속의 검은 잎’을 다시 음미해 봅니다. “가짜뉴스’를 쓰고, 퍼 나르는 사람들의 혀가 시꺼멓지 않을까?” 소름이 돋습니다. / <가족신문.kr>, <시사전북(10월호)> 에도 실렸습니다.

을하

   




자유롭게 글을 쓰는 공간 [2] 관리자 2004/03/17 2777
<칼럼> 입 속의 검은 잎 장택상 2018/10/06 116
158 <칼 럼> 청록집(靑鹿集) 장택상 2018/02/18 552
157 <칼럼> 도시락 예찬 장택상 2016/10/06 1486
156 <칼 럼> 장아찌 예찬 장택상 2016/06/24 1731
155 [인문학스콜레-2地] 네이버밴드로 초대합니다. ... 하재일 2015/02/05 5774
154 카드용 가방 서재업 2014/08/15 1837
153 <포 엠> 물옥잠화 장택상 2013/10/01 2634
152 회원등록이 안됩니다. [1] 관리자 2013/09/12 1538
151 미술교육과 99학번 박영채 '혼혈아 앨리' 출간... [1] 박영채 2012/03/09 2894

  
  1     [2]    [3]    [4]    [5]    [6]    [7]    [8]    [9]    [10]   ....[16]